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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산업이 되는 나라, 스페인

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최지윤(스페인)

 

 

스페인의 거리를 걷다 보면 다양한 색깔의 쓰레기통이 눈에 띈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은 분리수거를 그리 꼼꼼하게 하지 않는 편이다. 한국처럼 세분화된 분리배출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자칫 스페인을 분리수거가 약한 나라로 오해하기 쉽다. 유럽은 환경 의식이 높다는 인식과 달리, 실제 현장은 꽤 느슨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시민 의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적 차이에서 기인한다.

 

스페인은 기업의 기술력과 효율성을 기반으로 도시를 운영한다. 한국에서 시민이 도시의 청결을 유지한다면, 스페인에서는 기업의 손끝에서 도시가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분리수거를 권장하긴 하지만, 실제로 가정에서 세심하게 분리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제대로 분류하지 않은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스페인에서 쓰레기 수거는 대부분 기업이 차량을 통해 수행한다. 

(출처: publico.es)

 

 

시민이 버린 쓰레기는 곧바로 Acciona, FCC, Serveo, Urbaser와 같은 대형 환경 서비스 기업의 관리망으로 들어간다. 이들 기업은 지방자치단체와 5년 이상 장기 계약을 맺고, 도시의 청소·폐기물 수거·재활용·조경·도로 세척까지 통합적으로 운영한다. 시민은 단지 쓰레기를 지정된 통에 넣기만 하면 된다. 그 이후의 복잡한 분류와 재활용 과정은 기업의 알고리즘과 장비가 자동으로 수행한다.

 

도시 환경 미화를 담당하는 Serveo는 차량과 컨테이너, 도로 청소 장비를 GPS·센서·AI로 연결해 도시 전체의 폐기물 이동을 실시간으로 관리한다. Acciona는 전기 수거차를 투입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Urbaser는 의료 및 산업 폐기물까지 통합 처리한다. 이들은 단순한 청소 회사가 아니라, 도시를 데이터로 운영하는 시스템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스페인은 시민의 참여율이 낮더라도 도시의 청결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한국이 ‘시민이 직접 분류에 참여하는 시스템’이라면, 스페인은 ‘기업이 기술로 대신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스페인에서 환경은 생활이자 산업이다. 다양한 환경 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도시의 청소·조경·재활용 설비를 맡아 수십만 명을 고용하고, 매년 수억 유로 규모의 공공 계약을 체결한다. 겉으로는 허술해 보이는 거리의 분리수거통 뒤에는, 거대한 기업 네트워크와 기술 시스템이 정교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 분리수거 시스템의 두 축 [현장(기업)과 시스템(EPR 조직)]

 

 

스페인의 분리수거 구조는 크게 두 축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도시 현장에서 직접 운영을 담당하는 환경 서비스 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그 뒤에서 설계와 관리 기능을 수행하는 재활용 관리 조직이다.

 

먼저 환경 서비스 기업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계약을 맺고 거리 청소, 쓰레기 수거와 운반, 재활용센터 관리 등을 담당한다. 이들은 시민이 배출한 쓰레기를 실제로 처리하는 ‘현장의 손발’이라 할 수 있다. 반면 Ecoembes, Ecovidrio, ERP España와 같은 비영리 재활용 관리기구는 쓰레기의 흐름을 설계하고, 기업의 재활용 의무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들은 스페인의 EPR(생산자책임확대,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제도 아래에서 운영되며, 제품을 생산·유통하는 기업으로부터 재활용 기금을 받아 전국적으로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수거·선별·재활용 전 과정을 총괄한다. 예를 들어 시민이 플라스틱 병을 노란색 통에 버리면, 환경 서비스 기업이 이를 수거하고, 재활용 관리기구는 그 데이터를 분석해 제조사가 부담해야 할 재활용 비용을 계산한다.

 

 

스페인 생수 브랜드 Bezoya를 비롯해 여러 기업들이

100% 재활용 플라스틱 병을 도입하며, 

순환경제 전환에 동참하고 있다. 

(출처: hporro.com)

 

 

스페인법 7/2022는 분리수거 시스템이 기업 중심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기업이 도시의 청결과 폐기물 관리를 책임지는 구조는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니라, 법으로 뒷받침된 순환경제 전환의 일환이다.

 

2022년에 제정된 이 법은 기업이 순환경제의 실질적 주체로서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 핵심 내용은 ‘비재사용 플라스틱 포장세(€0.45/kg)’다.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모든 기업은 제조·수입·EU 역내 거래 단계에서 세금을 부담해야 하며, 일정 비율 이상의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한 경우에만 감면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제품을 설계하고 원료를 선택하는 단계에서부터 재활용 가능성을 고려하도록 유도하는 구조적 장치다.

 

이러한 제도적 압력 덕분에 스페인 내 주요 유통 및 소비재 기업들은 이미 재활용 인증서를 확보하거나, 포장재 소재를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즉, 이 법의 목적은 환경세 징수가 아니라 기업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시민이 꼼꼼히 분리수거를 하지 않더라도, 기업이 자체적으로 재활용률을 높이는 기술과 시스템에 투자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스페인식 순환경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스페인 전역의 재활용 공장은 

시민이 분리 배출한 폐기물을 자동 설비로 분류·선별한다.  

(출처: reducereutilizarecicla.org)

 

스페인의 재활용 시스템은 기업이 중심이지만, 그 구조의 완성은 전국 곳곳에 위치한 재활용 플랜트에서 이루어진다. 시민이 배출한 폐기물은 선별센터를 거쳐 재활용 공장으로 이동하며, 이곳에서 자동화 설비와 수작업이 결합된 정교한 분류 과정이 진행된다. 금속은 자력을 이용해 걸러지고, 플라스틱은 광학 감지기를 통해 세밀하게 분리된다. 이렇게 선별된 자원은 세척·분쇄·재가공 과정을 거쳐 새로운 원료로 다시 태어난다. 종이는 펄프화되어 상자나 포장재로, 유리는 다시 병으로, 플라스틱은 가구나 배관, 산업용 부품으로 재탄생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폐기물 처리’가 아니라, 자원의 순환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산업이라 할 수 있다.

 

Ecoembes는 재활용 기업들을 엄격한 기준에 따라 인증하고, 2년마다 외부 감사를 통해 품질과 환경 기준을 검증한다. 인증을 받은 기업만이 수거된 폐기물을 구매·재활용할 수 있으며, 그 과정과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된다.

 

2023년 한 해 동안 스페인에서는 약 168만 톤의 가정용 포장재가 재활용되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3.5% 증가한 수치로, 스페인의 순환경제 정책이 점차 실효성을 거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Ecoembes의 통계에 따르면 이를 통해 약 168만 톤의 자원이 재활용되어 매립 폐기물이 크게 감소했으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나타났다.

 

이처럼 재활용 산업은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경제적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 생태계로 발전하고 있다. 수집·운반·분류·가공의 각 단계에는 다수의 중소기업과 기술 인력이 참여하며, 폐기물 처리 기술은 점차 에너지 회수와 신소재 개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플라스틱은 RDF(고형연료)나 재생 원료로, 전자폐기물은 구리나 귀금속 등의 자원으로 추출되어 재활용된다.

 

흥미롭게도 스페인은 이러한 기업 주도형 분리수거 문화를 생활폐기물에서 더 넓은 산업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5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Re-Viste’ 파일럿 프로젝트다. 이 프로그램은 의류와 신발 폐기물의 수거·재활용 체계를 시험하는 사업으로, Inditex, H&M, Mango, Decathlon, Primark 등 주요 패션 기업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 현재 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 중이며, 다양한 지역에서 여러 형태의 수거 모델을 실험한다. 거리의 전용 컨테이너, 매장 내 수거함, 학교·공공기관 포인트 등 다양한 회수 방식을 도입해, 수거된 의류를 재사용 가능품과 재활용 품목으로 분류·처리하고 있다.

 

 

스페인 섬유·신발 산업의 순환경제 프로젝트 

‘Re-Viste’가 운영하는 의류 수거함.

(출처: modaes.com)

 

Re-Viste는 단순한 CSR(사회공헌) 활동이 아니라,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생산자책임확대) 제도의 시범 운영 사례로 평가된다. 이 제도는 생산자가 제품의 전 생애주기, 특히 사용 후 폐기물 관리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유럽연합(EU) 지침에 따라 도입된 것이다. 현재 스페인에서는 버려진 의류의 약 12%만이 별도로 수거되고, 나머지는 여전히 매립이나 소각으로 처리되고 있다(Reuters, 2024). 이러한 상황 속에서 Re-Viste는 의류와 신발의 회수·선별·재활용 과정을 통합 관리하며, 패션 산업의 순환경제 실현을 위한 첫 번째 제도적 실험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스페인의 분리수거 구조는 한국 기업에게 문화적 관찰을 넘어, 제도와 산업의 변화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스페인은 시민이 아닌 기업이 시스템의 중심에 서 있는 나라다. 따라서 시장 진입의 핵심은 기술력, 규제 대응력, 그리고 현지 네트워크 구축이다.

 

무엇보다 스페인은 전통적인 수거 체계에 IT, 센서, AI를 결합해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스마트 수거 차량, 컨테이너 센서, 경로 최적화 시스템 등은 한국 기업이 기술 협력이나 시스템 수출 형태로 진출할 수 있는 유망 분야다. 한국이 축적해 온 데이터 기반 환경 관리 기술은 스페인의 대형 환경 서비스 기업들과 충분히 연계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시민 참여형 분리수거 모델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성공한 사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 캠페인, 공공참여 프로그램을 스페인의 기업 중심형 구조와 결합한다면, 참여와 효율을 동시에 구현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시내의 분리수거 컨테이너 

(출처: Ayuntamiento de Madrid)

 

규제 대응력 또한 필수 요소다. 스페인은 이미 비재사용 플라스틱 포장세(€0.45/kg)를 시행하고 있으며, 재활용 인증이 없는 포장재에는 세금 감면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다. 단순히 제품의 친환경성을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 포장 설계 단계에서부터 재활용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2025년 이후에는 섬유와 의류에도 EPR 제도가 확대될 예정이어서, 순환 설계(Circular Design)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데이터 관리 능력은 곧 경쟁력이다. 스페인 내에서 사업을 운영하려면 제품별 포장 재질, 플라스틱 함량, 재생 소재 비율, 재활용 실적 등 세부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특히 수입 기업의 경우 관세 절차와 함께 포장세를 납부해야 하므로, 세무·통관 시스템을 미리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시장 진입의 현실적 해법은 협력이다. 이미 인프라를 보유한 현지 기업과의 제휴, 혹은 Re-Viste와 같은 파일럿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실질적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또한 EU와 스페인 정부가 추진하는 순환경제 기금 및 보조금 프로그램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는 파일럿 프로젝트로 시작해, 보조금·융자·공공참여 사업으로 확장하는 방식이 안정적이다. 사업 참여 시에는 지분율, 현지 파트너 조건 등 세부 조항을 사전에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 신뢰다. 이제 ‘친환경’이라는 문구 하나만으로는 소비자를 설득할 수 없다. 회수·재활용 실적의 투명한 공개와 ESG 보고 체계의 구축은 선택이 아닌 기본이 되고 있다.

 

결국 스페인의 사례는 분리수거가 시민의 의무에서 기업의 전략과 기술 경쟁력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에게 스페인은 까다로운 환경 규제의 시장이 아니라, 기술과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다. 스페인에서는 순환경제로의 전환 흐름 속에서 이미 많은 기업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의 시대에 누가 먼저 움직이느냐가 곧 순환경제 시대의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