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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 소비자가 냉장고까지 원정쇼핑 나선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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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손영식(아르헨티나)
백색가전 가득 실은 자동차 행렬
요즘 아르헨티나ㆍ칠레 국경은 다시 붐비고 있다. 칠레에서 아르헨티나로 넘어오는 사람은 평소보다 많지 않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향하는 행렬은 부쩍 늘었다. 국경을 넘어 돌아오는 아르헨티나 자동차를 보면 제법 덩치 큰 가전제품들이 실려 있다. 마치 칠레에서 혼수를 장만한 듯 픽업트럭 적재함에는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에어컨 등 백색가전이 종류별로 가득하다.
아르헨티나로 돌아오는 자동차마다 칠레에서 구입한 백색가전이 가득 실려 있다. (출처: 현지 SNS)
사실 남미에서 국경을 넘는 ‘원정 쇼핑’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주유비를 아끼기 위해 휘발유탱크를 채우러, 혹은 달러 환율 차이를 이용해 값싼 스마트폰이나 의류를 사러 국경을 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백색가전이 원정쇼핑의 1순위 품목이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아르헨티나 소비자들을 칠레로 향하게 만든 기폭제는 무엇일까.
정부 “누구나 마약 빼곤 무엇이든 수입 가능”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 7월 말부터 개인의 백색가전 수입을 전격 허용했다. 1990년대 페소-달러 페그제 시절에도 수입 자유화가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적은 있었지만, 개인이 백색가전을 직접 수입할 수 있도록 문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조치를 발표하며 “이제 개인이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할 수 없는 것은 마약, 총기류,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유물, 그리고 상업적 재판매 목적의 상품뿐”이라고 못 박았다. 사실상 ‘필요한 물건은 무엇이든 들여올 수 있다’는 신호를 준 셈이다.
다만 남용 방지를 위한 장치도 마련됐다. 만 16세 이상만 수입이 가능하며, 종류별로 연 1회라는 제한이 붙는다. 예컨대 올해 냉장고 1대와 에어컨 1대를 들여왔다면, 세탁기는 추가로 수입할 수 있지만 냉장고를 다시 들여오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출처: Región Binacional)
만만치 않은 관세 부담
아르헨티나의 면세한도는 최대 500달러다. 항공편을 이용하는 해외여행자는 연간 1인당 500달러, 육로를 통해 브라질·칠레·우루과이 등 인접국을 오가는 경우에는 연간 300달러까지 면세가 적용된다. 그러나 개인의 백색가전 수입에는 이러한 면세한도가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즉, 초과분만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수입액 전부에 대해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부과되는 세금도 만만치 않다. 수입세(DIE) 20%, 통계세(TE) 3%, 부가가치세(IVA) 21%, 소득세 11%를 합치면 기본 세율만 55%에 이른다. 여기에 상품 분류 코드에 따라 추가 세금이 붙는다. 예컨대 코드 6으로 분류되는 에어컨은 내국세(II) 9.5%가 더해져 총 세율이 64.5%까지 올라간다. 사실상 ‘세금 폭탄’ 수준이다.
관세폭탄 납부해도 이익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소비자들이 칠레로 원정 쇼핑을 떠나는 이유는, 세금을 모두 부담하더라도 여전히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얼핏 이해하기 어렵지만 양국의 가전제품 가격 차이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모델 번호는 달라도 브랜드와 기능, 용량이 유사한 드럼세탁기를 비교해 보자. 참고로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모두 페소를 화폐 단위로 쓰며, 9월 현재 환율은 1 칠레 페소(CLP)당 1.47 아르헨티나 페소(AR$) 정도다.
남미에서 인기 있는 한국 브랜드 L◯의 9kg 드럼세탁기는 아르헨티나에서 최저 136만 7,399페소(AR$)에 판매되고 있었지만, 칠레에서는 비슷한 제품이 35만 9,990페소(CLP)에 불과했다. 이를 구입해 국경을 넘으며 55%의 세금을 낸다고 가정해도 총 지출액은 약 55만 7,990칠레페소, 아르헨티나 화폐로 환산하면 82만 237페소(AR$)에 그친다. 즉, 고율의 세금을 포함하더라도 아르헨티나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54만 페소(AR$), 미화 약 380달러(한화 약 52만 원)를 절약할 수 있다. 이 정도 차이라면 잠깐 국경을 넘는 수고쯤은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아르헨티나에서 자동차들이 줄지어 칠레로 넘어가고 있다. (출처: 일간 인포바에)
저환율의 심각한 부작용
양국 물가 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환율에 있다. 지금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다. 인플레이션이 진정세를 보인다지만 매월 2% 안팎으로 물가가 오르는 가운데, 페소-달러 환율은 더디게 상승하면서 불균형이 벌어진 것이다.
필자의 회사가 입주한 빌딩의 관리비 내역을 보면, 관리인 인건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현재 관리인은 월 300만 페소에 육박하는 급여를 받는데, 이를 달러로 환산하면 2,000달러(약 280만 원)를 훌쩍 넘는다. 환율이 워낙 낮다 보니 실제 체감보다 달러화 환산 금액이 크게 부풀려지는 것이다.
저환율의 부작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쇠고기다. 6월 기준 아르헨티나 국민 1인당 쇠고기 소비량은 연간 50.24kg으로 세계 1위다. 소 사육 두수가 인구보다 많을 정도로 축산 대국인 아르헨티나는 국민이 소비하고도 남을 만큼의 쇠고기를 생산한다. 그럼에도 올해 들어 오히려 쇠고기 수입을 늘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산 쇠고기 1,500톤을 수입했는데, 이는 1월(500톤)보다 3배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같은 달 100톤과 비교하면 무려 15배 급증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국내에서 도축·가공하는 비용보다 수입하는 편이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한 쇠고기 가공업체 대표는 “국내 생산 비용을 달러로 환산하면 브라질산 쇠고기보다 훨씬 비싸다. 품질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춘 브라질산 쇠고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수출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나란히 중국에 쇠고기를 수출하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아르헨티나가 시장 점유율을 브라질에 빼앗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저환율이 국내 산업에 부담을 주는 동시에 대외 경쟁력까지 약화시키는 악순환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저환율 고집하는 아르헨티나 정부
부작용이 분명함에도 아르헨티나 정부가 페소-달러 환율을 급격히 올리지 않는 이유는 물가 충격 때문이다. 환율이 오르면 아르헨티나 경제계는 습관적으로 가격을 먼저 올려버린다. 오랜 인플레이션 속에서 달러를 기준으로 경제를 운영해 온 습성이 굳어진 탓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보고서에서 아르헨티나의 외환정책을 비판했다. 정부가 외환보유액 확충에 정책적 역량을 기울이지 않아 중장기적으로 시장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IMF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를 사들여 외환보유액을 늘리고, 동시에 페소-달러 환율이 물가상승률과 보폭을 맞추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런 경고에 귀를 기울인 듯 페소-달러 환율은 다소 빠르게 오르는 추세다. 공식 환율도 정부가 밴드제 상한선으로 설정한 1,400페소를 넘나들고 있다. 정부가 환율 정책을 본격적으로 수정할지 주목된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