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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 스며든 한국 소주, 한류가 만드는 새 물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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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조상우(필리핀)
한국인의 필리핀 방문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완만히 증가하다가, 2000년대 들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는 한국인이 필리핀을 방문하는 최대 외국인 집단으로 자리 잡았고, 2019년에는 약 198만 명이 찾으며 정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잠시 감소했으나 2022년 이후 빠르게 회복해, 2024년에는 필리핀을 찾는 외국인 545만 명 중 157만 명(26%)을 차지하며 다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한국인이 매년 필리핀을 찾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술은 맥주다. 독일 하면 맥주, 멕시코는 테킬라, 러시아는 보드카, 프랑스는 와인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며, 한국 역시 한류 열풍과 함께 소주가 국가 대표 술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필리핀의 경우는 어떨까?
필리핀에서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주류는 산 미겔(San Miguel)로 대표되는 맥주와 럼, 그리고 진이다. 이 가운데 탄두아이 럼(Tanduay Rum)은 세계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며, 히네브라 산 미겔(Ginebra San Miguel)의 진 역시 현지에서 압도적 인기를 누린다. 그러나 이들 술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 전래된 외래 술의 계보를 잇고 있어, ‘필리핀 고유의 전통주’라 부르기엔 다소 아쉬움이 있다.
물론 필리핀에도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고유한 전통주 문화가 있다. 이러한 전통주는 오늘날에도 지역 축제나 결혼식 등 중요한 행사에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술은 람바녹(Lambanog)이다. 흔히 ‘코코넛 보드카’라 불리는 람바녹은 코코넛 나무 꽃에서 얻은 즙(Sap)을 발효시켜 만든 투바(Tuba)를 증류하여 만든다. 알코올 도수는 40~45%로 매우 높지만, 맛은 맑고 부드러우며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주로 루손섬 남부(케손, 라구나, 바탕가스 등지)에서 생산되며, 최근에는 과일향이나 버블껌 향을 가미한 가향 제품도 등장하고 있다. 람바녹은 모임이나 축제,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술이다.
(출처: Metro News Central)
투바(Tuba)는 코코넛이나 니파 등 야자나무의 꽃에서 채취한 수액을 자연 발효시켜 만든 전통주로, 알코올 도수는 2~4%로 비교적 약한 편이다. 루손섬 북부 일로코스(Ilocos) 지방에서는 사탕수수즙을 전통 항아리인 부르나이(Burnay)에 담아 오랜 시간 숙성 시켜 만든 바시(Basi)가 전승되고 있다. 또한 루손섬 북부 산악 지역에서는 타푸이(Tapuy)라는 술이 전해 내려온다. 타푸이는 찹쌀을 쪄서, 발효에 필요한 곰팡이·박테리아·효모가 섞인 자연 발효제 ‘부보드(bubod)’를 이용해 빚은 맑은술로, 도수는 14~19% 정도다. 특히 바나웨 라이스 테라스에서 맛본 흑미 타푸이는 깊은 풍미 덕분에 한국에도 소개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 밖에도 필리핀 남부 비사야(Visayas)와 민다나오(Mindanao) 지역에는 팡가시(Pangasi), 바할리나(Bahalina) 등 지역의 특색을 담은 전통주가 전해지고 있다.
필리핀 주류 시장 현황과 성장 전망
2024년 기준 필리핀 인구는 약 1억 1,000만 명이며, 이 중 만 18세 이상 성인 인구 비율은 약 62%로 주류 소비 가능 인구가 상당하다. 2021년 필리핀 보건부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약 40%가 최근 한 달 내 음주 경험이 있을 만큼 음주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시적으로 소비가 감소했으나, 이후 주류 시장은 빠르게 회복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필리핀 주류 시장 가치는 이미 미화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미 농무부(USDA)는 유로모니터 추산치를 인용해 2024년 필리핀 주류 소비량이 전년 대비 6.82% 증가한 36억 리터에 달했다고 밝혔다. 주류 소비 비중을 보면 맥주가 전체의 74%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고, 증류주는 25%, 와인 및 기타 주류는 1%였다. 맥주가 여전히 시장의 주류(主流)를 이루지만, 증류주 역시 꾸준히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증류주 시장은 필리핀 브랜드인 탄두아이(Tanduay)와 엠페라도(Emperador)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나, 최근에는 위스키 등 수입 증류주에 대한 소비도 늘고 있다. 야간 활동이 많은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칵테일 문화가 확산되면서 고급 제품 수요도 증가하고 있으며, 한류 영향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주 판매량도 빠르게 늘고 있다.
(출처: 조상우)
미 농무부(USDA)는 같은 보고서에서 “매년 지속적인 주류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현지 및 수입 주류 판매는 매년 5~7%씩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필리핀 정부는 공화국법 제11467호에 따라 올해 1월 1일부터 증류주에 대한 주류세를 6% 인상했으며, 향후 매년 동일한 비율로 인상할 예정이다. 필리핀은 맥주·와인 등 저도주에는 종량세를 적용하지만, 알코올 함량 25%를 초과하는 고도주에는 종량세와 종가세를 혼용하여 부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금 인상이 단기적으로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더라도, 소비 심리가 견조하고 한류 및 칵테일 문화 확산이 뒷받침되는 만큼 필리핀 주류 시장은 앞으로도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류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한국 소주
소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주류로, 최근 몇 년간 한류 열풍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뮤직비디오에서 소주가 자주 등장하며, 이를 본 필리핀 팬들 역시 자연스럽게 한국 술과 음주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필리핀 매체 《Premier》는 “진로 소주는 한국 대중문화 확산에 기여했다”라고 평가하며, 드라마 <도깨비>, <오징어게임>, <사내맞선>, <술꾼도시여자들> 속에서 소주가 사랑 고백이나 대화 등 주요 장면의 매개체로 자주 등장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필리핀 내 소주 인기 요인은 진로 모델 아이유”라고 덧붙였다. 《CNN Philippines》 역시 소주를 “녹색 병과 작은 잔”으로 소개하며 “소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한국 문화를 즐기는 경험”이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필리핀에서 소주를 즐기는 소비층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과거에는 필리핀 내 한인 가정이나 한식당을 중심으로 소비되었으나, 최근에는 현지인들이 삼겹살 전문점에서 소주를 찾거나, 주스·요구르트와 섞어 칵테일처럼 즐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 현재 마닐라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주류 매장, 펍, 편의점에서도 진로·참이슬 등 대표 브랜드를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일부 매장에서는 막걸리, 탁주, 청주 등 한국 전통주도 함께 판매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인 거주 인구가 크게 줄었음에도 소주 수출은 급격히 늘었다는 것이다. 필리핀 내 재외동포 수는 2013년 약 8만 8천 명에서 2023년 3만 4천 명으로 61% 이상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필리핀으로의 소주 수출은 3.5배 증가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연평균 약 41%씩 성장했는데, 이는 소주 소비층이 한국 교민 중심에서 현지인으로 확대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필리핀 소주 시장에서 가정용 일반 판매 비중은 2018년 40%에서 2024년 71%로 늘어난 반면, 유흥용 판매 비중은 같은 기간 60%에서 29%로 줄었다. 필리핀에서 70개 매장을 운영하는 한식 프랜차이즈 ‘삼겹살라맛’ 관계자도 “소주는 이제 한국인 관광객이 아니라 현지 필리핀인들이 주로 소비한다”고 전했다.
2024년 기준, 한국 소주 수출량은 12만 4,000톤으로 전년 대비 4.2%, 수출액은 3.9% 증가했다. 이 중 필리핀으로 수출된 소주는 전체 수출량의 약 3.5%를 차지하며, 수출액은 약 1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특히 진로는 필리핀 소주 시장에서 약 67%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진로 소주는 전국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유통망이 확대되며, 필리핀에서 가장 대중적인 한국 술로 자리 잡았다.
필리핀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주 광고 (출처: 조상우)
필리핀 소비자 입맛 사로잡은 하이트진로
한국 희석식 소주의 대표 기업 하이트진로는 2016년부터 현지 유통사들과 협력하며 필리핀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2019년에는 필리핀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세븐일레븐(4,400여 매장), 퓨어골드(700여 매장), 대형 유통체인 SM 등 주요 유통 채널에 입점하며 소비자들이 일상 속에서 손쉽게 소주를 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2020년 ‘딸기에 이슬’, 2022년 ‘복숭아에 이슬’ 등 과일 맛 소주를 선보이며 현지 젊은 소비자층의 입맛을 공략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2021년 7억 원, 2022년 1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필리핀 주류 대기업 엠페라도르가 2020년 ‘소 나이스 소주(So Nice Soju)’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소 나이스 소주’는 알코올 도수 14.5%로, 청포도·자몽 등 다양한 과일 맛을 앞세운 현지 생산 소주다. 전통 한국 소주보다는 가볍고 달콤한 풍미를 강조해 소주에 익숙하지 않은 신규 소비자층을 빠르게 흡수했다. 또한 현지 생산을 통한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필리핀 소주 시장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한국 업체들은 가격과 제품 전략을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트진로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현지 법인 설립 4년째인 2023년, 매출 109억 원과 당기순이익 3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과일 맛 소주의 비중은 과거 매출의 60%에서 줄어든 반면, 오리지널 진로 소주의 비중이 68%를 차지하며 현지 소비자들의 취향이 ‘전통 소주 맛’으로 이동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이 같은 흐름에 힘입어 하이트진로는 2025년 상반기에만 11억 원의 흑자를 거두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문화적 융합과 소비자 맞춤형 마케팅
하이트진로는 현지 젊은 세대를 겨냥한 감성적 마케팅에도 집중하고 있다. 필리핀 MZ세대를 대상으로 ‘진로 나이트’와 K-콘텐츠 팬 행사, 미식 행사 ‘메가 볼’을 지원하며 소주를 젊은 문화와 연결했다. 지난 5월에는 필리핀 걸그룹 ‘YGIG’와 함께한 ‘진로 라이브’에서 술자리게임과 음주 경험을 공유하며 관심을 끌었다.
또한 하이트진로는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소주와 어울리는 안주 소개, ‘소맥(소주+맥주)’ 제조법, 한국식 음주 문화 등을 담은 콘텐츠를 제공하며 소비자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특히 필리핀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팀플라도(Timplado)’ 문화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 팀플라도는 소주를 요구르트, 탄산음료, 커피, 우유 등 다양한 음료와 섞어 마시는 방식으로, 현지 입맛과 사교 문화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소주는 현지 젊은 세대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성장 가능성과 확장 전략
필리핀 주류 시장은 오랫동안 맥주와 현지 증류주가 주류를 이뤄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류 열풍과 개방적 음주 문화 확산에 힘입어 소주를 비롯한 수입 주류의 입지가 급속히 확대됐다. 하이트진로는 현지 특성에 맞는 유통망 구축과 제품 다변화, 문화적 융합 마케팅을 통해 소주를 일상 속 음주 선택지로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도 인구 증가, 도시화, 그리고 프리미엄·다양한 주류에 대한 수요 확대에 따라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전망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소주뿐만 아니라 막걸리, 청주 등 한국 전통주가 한류 콘텐츠와 함께 더욱 보급된다면, 한국의 식문화와 음주 문화가 필리핀 사회에 한층 깊이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