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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가 살아 숨 쉬는 쓰임, 캐나다 중고·기부 산업의 풍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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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김남희(캐나다)
이사철, 집 앞 풍경에서 시작된 이야기
캐나다의 봄과 가을, 특히 이사철이 되면 동네 풍경이 달라진다. 마당 한쪽에는 ‘Garage Sale(가라지 세일)’이라는 손 팻말이 세워지고, 차고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안에는 주인이 쓰던 식탁, 소파, 자전거, 장난감, 주방용품이 보기 좋게 진열된다. 이웃이나 지나가던 사람이 들어와 물건을 둘러보고, 몇 달러를 내거나 무료로 가져가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필요 없어진 물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생활 도구가 되는 순간이다.
집 앞 인도에는 초록색이나 파란색의 대형 의류 기부함도 눈에 띈다. 그 앞에 주차한 차에서 상자가 내려오고, 안에는 계절이 지난 옷, 아이가 자란 옷, 잘 쓰지 않는 주방 기구들이 담겨 있다. 상자를 기부함에 넣는 순간, 이 물건들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기부는 베풂이자, 물건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생활 습관이다. 버려질 수 있었던 물건이 기부나 재판매를 통해 다시 쓰이며, 물건의 두 번째 삶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일상이 캐나다 중고·기부 문화의 출발점이 된다.
산업으로 자리 잡은 ‘중고의 세계’
캐나다의 중고 산업은 이미 하나의 큰 장터이자 순환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예가 Value Village(밸류 빌리지)로, 전국적으로 매장을 운영하며 의류뿐만 아니라 주방용품, 가구, 장식품, 책, 장난감까지 없는 게 없다.
캐나다 캘거리(Calgary)의 Value Village Boutique (출처: Retail Insider)
Value Village의 2024년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의 90%가 중고 매장을 이용하거나 기부한 경험이 있으며, 특히 Z세대의 40% 이상은 중고 쇼핑을 정기적으로 즐긴다고 한다. 캐나다 재판매 의류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42억 캐나다 달러에 달하며, 미국과 합산하면 2025년에는 약 248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흥미로운 점은 Value Village가 단순히 기부받은 물품을 무료로 판매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 자선단체가 모은 물품을 매입해 재판매하는 영리 기업으로 운영된다. 이렇게 발생한 수익은 일부는 자선단체의 운영비로, 나머지는 기업의 재정 기반으로 활용된다.
이런 구조 덕분에 캐나다의 중고 시장은 안정적으로 운영되며, 매장·물류·선별·가격 책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한다. 온라인 거래 플랫폼인 Facebook Marketplace, Kijiji, Poshmark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캐나다 소비자의 83%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중고품을 구매한다. 그만큼 매장 속 보물 찾기의 매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쓰리프팅, 취미가 된 쇼핑
캐나다에서 ‘Thrifting(쓰리프팅)’은 하나의 취미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특히 10~30대 젊은 세대는 신상품보다 개성이 뚜렷하고 희소성이 있는 물건을 찾는 데 흥미를 느낀다.
유튜브와 틱톡에는 ‘Thrift Haul(쓰리프트 하울)’ 콘텐츠가 꾸준히 올라온다. 영상 속 크리에이터들은 중고 매장에서 발견한 의류, 가방, 액세서리, 인테리어 소품을 카메라 앞에 하나씩 보여주며, 구매 가격과 함께 “이건 단돈 5달러에 샀다” “이 디자인은 요즘 매장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댓글에는 “그 매장이 어디냐”, “나도 가서 찾아봐야겠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이들에게 Value Village는 보물 창고와 같다. 수백 개의 옷걸이와 진열대 속에서 나만의 발견을 찾아내는 과정은 마치 보물찾기 게임처럼 느껴진다. 원하는 브랜드나 스타일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실용적 만족감, 오래된 물건이 가진 빈티지 감성에서 오는 소장 가치가 동시에 작용한다.
다양한 색상의 겨울 코트와 의류가 진열된 랙, 벽면 가득한 구두·가방 진열대로 가득한 Value Village 매장 모습 (출처: Retail Insider)
쓰리프팅 문화는 환경 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대량생산·대량소비에 대한 피로감, 패스트패션이 초래하는 환경 피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중고 쇼핑은 개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충족하는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쓰리프팅을 즐기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환경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가장 먼저 꼽는다. 자신이 산 물건이 폐기물로 버려지지 않고 계속 쓰인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세대 차이가 만든 기부의 길
캐나다의 중고·기부 문화에는 세대 간 가치관의 차이도 작용한다. 부모 세대는 결혼할 때 장만한 가구, 기념일에 받은 크리스털 잔, 여행에서 산 도자기 접시처럼 오랜 세월 함께한 물건에 깊은 애착을 가진다. 집 안 한쪽에 조용히 자리 잡은 채 세월을 버텨온 물건들이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녀 세대의 생각은 다르다. 실용성과 공간 활용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는 ‘예쁘지만 쓸모없는 물건’이나 ‘집 인테리어와 맞지 않는 가구’를 굳이 보관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부모 세대의 ‘보물’은 자녀 손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부함이나 중고 매장으로 향하게 된다.
토론토의 한 주택가 모퉁이, 초록색 철제 기부함 앞에 SUV 한 대가 멈춘다. 뒷좌석에는 가지런히 개어진 옷가지, 아직 깨끗한 아동 장난감, 세월의 흔적이 남은 커피포트가 담긴 상자가 놓여 있다. 운전석에서 내린 중년 부부는 물건을 하나씩 기부함에 넣고는 서로 미소를 나눈다. “이제 다른 사람이 잘 쓰면 되죠.” 그 말에는 물건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다시 쓰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다.
Value Village 의류 기부함 모습 (출처: Rangeview Fabricating)
기부 문화, 그리고 그 속의 현실
캐나다에서 기부는 생활의 일부다. Value Village뿐 아니라 Salvation Army Thrift Store, Habitat for Humanity ReStore 등 여러 단체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현금 기부는 세금 공제가 가능하지만, 물품 기부는 단체의 성격에 따라 공제 여부가 달라진다. Value Village처럼 영리 구조를 가진 곳에 물건을 기부하면 세금 혜택은 없지만, 대신 환경 보호와 재사용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이 구조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기부’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상업적 유통망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흐름이 없었다면 상당수 물건이 쓰레기 매립지로 직행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환경과 순환 경제의 연결고리
캐나다 환경부에 따르면, 매년 약 130만 톤의 의류가 소비되고 이 가운데 110만 톤이 폐기된다. 워털루대학교(University of Waterloo)의 연구에 따르면 매년 약 50만 톤의 패브릭 제품이 버려지며, 그중 85% 이상이 매립된다. 국민 1인당 연간 14~25kg의 의류를 버린다는 통계도 있다.
문제는 폐기된 의류가 분해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면·리넨은 수개월에서 수년이 소요되며,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같은 합성섬유는 수백 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와 미세플라스틱은 기후 변화와 해양 오염의 주요 원인이 된다.
중고품 재사용은 이러한 환경 부담을 크게 줄인다. 예컨대 면 티셔츠 한 장을 새로 생산하려면 약 2,700리터의 물이 필요하지만, 재사용을 선택하면 그만큼의 물을 절약할 수 있다. 국제 재활용협회(IRG)에 따르면, 의류 1톤을 재사용할 때 이산화탄소(CO₂) 배출 약 25톤을 줄일 수 있다.
Salvation Army Thrift Store는 매년 9,400만 파운드 이상의 물품을 매립 대신 재유통한다. 전문가들은 중고품 재사용률을 현재보다 24%만 높여도 연간 약 70억 캐나다 달러 상당의 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일부 주와 도시에서는 의류 재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 토론토(온타리오주): ‘Sewing Repair Hubs’를 운영해 주민들이 직접 의류를 수선·재사용하도록 지원 - 마컴(온타리오주): 승인받은 비영리단체 기부함만 설치 허용하고 불법 투기를 막기 위한 조례 시행 - 연방 차원: 2023년 ‘Bill C-337’ 발의, 섬유 폐기물 감축을 위한 국가 전략 수립 추진
이처럼 캐나다의 중고 기부와 순환 경제는 기후 변화 대응과 자원 보존을 위한 실질적인 해법이자, 지역사회와 환경을 동시에 살리는 선택이다.
‘Shop. Reuse. Reimagine.’ 슬로건이 걸린 깔끔한 건물 전면과 함께, 우측에는 기부함이 설치되어 의류 기부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출처: Retail Insider>
낡음이 주는 미래 가치
캐나다의 중고·기부 문화는 단순히 ‘헌 옷 장사’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속에는 세대 간 가치관의 변화, 환경을 지키려는 의지, 그리고 지역사회를 잇는 연대가 담겨 있다. 부모 세대가 아끼던 물건이 자녀 세대의 선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기부를 통해 누군가의 일상에서 다시 쓰임을 얻는다. 낡음은 ‘버려짐’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향한 여정이 된다. 그것이 바로 캐나다가 보여주는 문화적 풍경이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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