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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진작 서두르는 아르헨티나 “숨겨둔 달러 마음 놓고 쓰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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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손영식(아르헨티나)
월드컵 원정 응원 다녀온 후 날벼락
아르헨티나가 우승컵을 들어 올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역대 최다 발롱도르 수상 등 숱한 기록을 세우고도 월드컵 우승이 없다는 이유로 디에고 마라도나보다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에게는 마침내 한을 풀 수 있었던 대회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오벨리스코 광장에는 무려 400만 명의 인파가 몰려 금의환향한 월드컵 대표팀을 열렬히 환영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구가 약 320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날의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선 약 3만 5,000명의 열성 축구팬들이 카타르까지 날아가 경기를 직접 관람하며 대표팀을 뜨겁게 응원했다. 나중에 이들이 국세청의 감시 대상으로 떠오를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만 말이다.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오벨리스코에서 400만 인파가 몰린 가운데 월드컵대표팀 환영식이 열리고 있다. (출처: 7news)
아르헨티나에는 영세 자영업자나 소규모 전문직 종사자를 위한 간이세제가 있다. 현지에서는 이를 ‘모노트리부토(Monotributo)’라고 부르며, 여기에 등록하면 부가가치세를 별도로 정산할 필요 없이 정해진 금액만 납부하면 납세 의무를 다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 제도는 매출, 사업장 면적, 전력 사용량 등을 기준으로 등급이 나뉘며, 각 등급에 따라 1년간 고정된 세금을 낸다. 덕분에 간이세제 납세자들은 “이번 달 매출이 늘었는데 세금을 더 내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2022 카타르 월드컵 이후, 아르헨티나 국세청(ARCA)은 카타르 원정 응원을 다녀온 축구팬들의 납세 실적을 조사했고, 이 가운데 181명에게 간이세제 등급 상향을 통보했다. 이들은 대부분 간이세제 중 가장 낮은 A·B등급에 등록된 납세자들이었다. 국세청은 이들의 신용카드 및 체크카드 사용 내역과 납세 실적을 비교한 결과, 소득과 지출 사이에 불일치가 있다며 탈세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이 정도 씀씀이라면 더 높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사실 이러한 사례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간이세제 대상자의 소비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크다고 판단되면, 국세청은 간이세제 자격을 박탈하고 일반 납세자로 전환시키기도 한다. 한때는 고액의 학비를 내는 사립학교 학부모 명단 제출을 요구할 정도로, 국세청의 탈세 감시가 집요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니 돈이 있어도 불이익을 우려해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진 달러 마음대로 써라”
그랬던 아르헨티나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자금의 출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며, 국민에게 가진 돈을 마음껏 쓰라고 권하고 있다. 그것도 출처가 불분명해 ‘검은 돈’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달러까지 거리낌 없이 사용하라고 호소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루이스 카푸토 아르헨티나 재무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최소 2,000억 달러 이상의 현금성 외환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 막대한 자산이 금융권 밖에서 사실상 잠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기 부양을 위해 이 돈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고, “가전제품, 자동차, 심지어 부동산 등 어떤 것이든 구입해도 좋다. 세무당국은 자금 출처에 대해 그 어떤 설명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현금성 외환자산’이란, 국민들이 자택이나 대여금고 등에 은밀히 보관해온 신고되지 않은 달러 자산을 의미한다. 이는 지난달 필자가 언급한 ‘매트리스 밑 달러’를 보다 점잖게 표현한 셈이다.
루이스 카푸토 아르헨티나 재무장관. (출처: 카를로스파스비보)
국세청도 이에 발맞춰 대응하고 있다. 개인이 은밀히 보관해온 달러로 자동차를 구입해도 정말 문제가 없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대해, 후안 파소 국세청장은 “달러 지폐로 직접 거래해도 좋고, 딜러 계좌에 달러를 입금해도 무방하다”며 자금 출처에 대한 증빙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소비에 사용된 달러의 출처는 묻지 않을 것이며, 소비자의 재산에 대해 감시나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천명하며, 안심하고 보관 중인 달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당부했다. 아르헨티나는 중앙은행,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3개 기관의 시행규칙을 통해 미신고 외환자산의 출처를 묻지 않겠다는 법적 근거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제 계좌이체도 마음 놓고
국세청은 그동안 은행 거래에 대한 감시를 매우 엄격하게 해왔다. 기존에는 개인의 계좌에 100만 페소(약 850달러) 이상이 입금되거나 이체되면, 은행은 해당 거래 내역을 국세청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했다. 이로 인해, 아무런 불법이 없고 정당하게 번 ‘깨끗한 돈’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사이에선 국세청의 감시망에 걸릴까 봐 은행 거래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만큼 거래 내역을 들여다보는 당국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이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은행의 정보제공 의무 자체를 폐지하지는 않되, 기준 금액을 대폭 상향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개인 계좌에 5,000만 페소(약 4만 2,400달러), 법인 계좌에는 3,000만 페소(약 2만 5,500달러) 이하의 입금이나 이체가 발생할 경우, 은행은 이를 국세청에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현금 인출에 대한 감시 기준도 완화된다. 그동안은 인출 금액과 상관없이 모든 현금 인출이 국세청에 보고됐지만, 앞으로는 1,000만 페소(약 8,500달러) 이상 인출 시에만 보고 의무가 생긴다.
정기예금 관련 규제도 완화된다. 지금까지는 100만 페소(약 850달러) 이상의 정기예금 정보가 국세청에 자동 보고됐지만, 앞으로는 개인의 경우 1억 페소(약 8만 5,000달러), 법인의 경우 3,000만 페소(약 2만 5,500달러) 이상 예금만 보고 대상이 된다. 그동안은 거액을 정기예금에 예치할 경우 세무조사를 받을까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번 조치로 그런 부담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국산 자동차도 달러로 판매 준비
정부가 미신고 현금성 외환자산을 마음 놓고 사용하라고 권장하자, 아르헨티나의 완성차 업계는 즉각 발 빠르게 반응했다. 포드, 도요타, 폭스바겐, 르노 등 아르헨티나에 조립공장을 보유한 다국적 완성차 업체들은 자국 생산 차량에 대해서도 달러 결제를 허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간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현대, 기아 등 수입차는 달러 기준으로 가격이 책정돼 판매되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 반면, 아르헨티나에서 조립되는 국산차(Made in Argentina)는 일반적으로 페소화 기준으로 가격이 정해졌다.
포드 아르헨티나 관계자는 “국산차를 달러로 판매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건 아니다. 중앙은행의 승인을 받아 일부 사례는 존재했지만 많지는 않았다”며, “이번에는 달러 할부 판매까지 도입해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자사 국산차 판매의 약 37%가 할부로 이뤄졌으며, 인플레이션이 다소 진정된 영향으로 할부 구매를 선호하는 소비자는 더욱 늘고 있다. 실제로 올해 1~4월 기준, 포드 국산차의 할부 판매 비율은 48%에 달했다. 즉, 아르헨티나에서 판매되는 포드 국산차 2대 중 1대는 할부로 팔리고 있는 셈이다.
아르헨티나 포드 조립공장의 조업 모습. (출처: 디에시세이스 발불라스)
정부가 미신고 달러자산 쓰라는 이유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개인이 보관 중인 미신고 현금성 외환자산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유도하는 이유는, 긴축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등 국제금융기구는 올해 아르헨티나가 중남미 국가 중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실제 경제 회복세는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초강력 긴축 정책으로 인해 시중에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루이스 카푸토 재무장관은 “일자리가 늘고 급여가 오르기 위해선 경제가 성장해야 하고, 성장을 위해선 소비와 투자가 활발해야 한다”며 “하지만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늘리지 않아 시중 유동성이 부족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금융권 밖에서 잠자고 있던 달러가 시장에 풀리기 시작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통계청에 해당하는 국립통계서비스연구소(INDEC)는 보고서를 통해, 2023년 4분기 기준 아르헨티나 국민이 보유 중인 미신고 현금성 외환자산(달러 지폐 현금)을 약 2,712억 달러로 추정한 바 있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