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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앞둔 아르헨티나, 투표율 70%의 비결과 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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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수출지원 해외 서포터즈 / 손영식(아르헨티나)

 

미국보다 자유 1개가 적다고?

 

아르헨티나는 올해 대선과 총선을 치른다. 선거가 있을 때면 대학시절 한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이 꼭 떠오른다. 비교헌법론을 강의하시던 그 교수님은 “우리(아르헨티나)는 미국보다 적어도 1개의 자유를 덜 누리고 있다”고 하셨다. 무슨 말인지 궁금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교수님은, “미국 국민은 투표의 자유를 갖고 있지만, 아르헨티나 국민은 투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할 뿐”이라고 하셨다. 아르헨티나에서 투표는 권리 이전에 의무라는 의미였다. 

 

맞는 말이다. 아르헨티나에선 선거 때 18세 이상, 70세 이하 유권자라면 누구나 주소지 투표소에서 의무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의무이다 보니 의무를 다하지 않은 국민에겐 불이익이 따른다. 가장 대표적인 불이익은 벌금이다. 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어 금액이 조정될지 모르지만, 투표에 불참하면 최고 500페소의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2차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1년간 행정기관에서 각종 수속이 불가능하고 3년간 공직에 취업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투표의 의무가 면제되는 경우도 있다. 투표 당일 몸이 아프거나 개인적 사정으로 투표소로부터 5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경우, 예컨대 먼 지방이나 해외에 나가 있는 유권자에겐 투표 의무가 면제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소명은 유권자의 몫이다. 원거리에 있는 사람은 가까운 경찰서에, 해외로 나간 유권자는 영사관에 투표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받아 선거법원에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몸이 아팠던 사람은 의사로부터 확인서를 발급받아 선거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투표를 해도 투표를 하지 않아도, 선거는 의무로 시작해 의무로 끝나는 셈이다. 

 

선거일엔 주류 판매가 금지된다. 선거 전날 저녁 8시부터 선거 당일 저녁 9시까지 술을 팔면 안 된다. 술을 팔다 적발되면 짧게는 15일, 길게는 6개월 구류에 처해질 수 있다. 맑은 정신으로 소중한 1표를 행사하라는 취지지만, 왠지 투표의 의무에 대한 또 하나의 강제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2021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출처: 클라린)

 


볼모로 잡힌 유권자


‘맑은 정신’으로 ‘무조건 투표해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제도에 대한 반발일까. 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일지, 막연히 투표를 귀찮게 여기는 것인지, 신세대 유권자 중에선 투표하지 않고 벌금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필자가 아는 40대 현지인 치과의사도 마지막으로 투표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투표율은 늘 높은 편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했던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1983년 이후, 지금까지 투표율은 7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1983년과 1989년 대통령선거 투표율은 역대 최고인 85%를 웃돌았고, 1990년대 투표율도 82%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투표율은 80% 아래로 내려갔지만, 70% 이상을 유지했다. 투표율 70%대가 붕괴된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2021년 실시된 오픈프라이머리 선거 때 딱 한 번뿐이었다. 당시 투표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지만, 그럼에도 68%였다. 

투표가 의무이다 보니 정치인들이 선거를 치르는 데 수월한 점이 있다.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투표소까지 끌어낼 고민은 적어도 할 필요없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결국 유권자는 의무투표라는 족쇄를 차고 볼모로 잡혀 있는 셈이다. 대중영합주의, 이른바 포퓰리즘이 위세를 떨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필자와 친분이 있는 한 보험회사 대표는 “오늘날 아르헨티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의무투표제”라며 “의무투표제를 폐지하지 않는 한 정치의 후진성 탈피는 요원하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유대인으로 아르헨티나를 분석하는 시각이 나름 탁월하다. 


망가진 양당제

전통적으로 아르헨티나는 양당제였다. ‘페론당’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정의당과 급진당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런 기본 정치구도는 바뀐 지 오래다. 이젠 대통령선거에서도 총선에서도 독자적으로 후보를 내는 정당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권주자는 정당 대신 선거연대의 이름으로 선거에 나선다. 일주일 새 대통령이 다섯 번이나 바뀌는 극도의 국가적 혼란을 겪은 후 2002년 정의당이 복수의 대통령후보를 내기 위한 꼼수로 다소 기형적인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현재 집권세력은 ‘조국을 위한 연합’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선거연대로, 여기에 참여한 정당은 정의당을 포함해 무려 17개나 된다. ‘조국을 위한 연합’이 좌파 연대라면 7개 정당이 힘을 합쳐 결성한 ‘변화를 위해 함께’는 이에 맞서는 우파 선거연대다. 2개의 정치세력(선거연대)이 집권 경쟁을 벌인다는 점에선 과거 양당제와 크게 다를 게 없는 구도지만, 이념적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정당에 비해 내부 결속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현행제도의 폐단이자 달라진 점이다. 

국가운영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도 한계를 보인다. 국민적 관심사인 특정 현안을 놓고 같은 선거연대에 몸담고 있는 대권주자마다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한 예이다. 언젠가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가장 민감한 이슈인 페소-달러 환전 규제와 관련해 야권 선거연대 ‘변화를 위해 함께’의 대통령예비후보 B는 “집권하면 바로 폐지하겠다”, 또 다른 예비후보 L은 “당장 폐지는 불가능하다. 최소한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각각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야권 지지층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고조되는 선거 정국

올해 대통령선거와 총선은 10월 22일 동시에 실시된다. 대통령선거에선 정·부통령이 선출되고, 총선에선 임기를 마치는 하원의원 130명과 상원의원 24명이 뽑혀 양원이 부분적으로 물갈이된다. 대통령을 뽑는 1차 선거에서 정·부통령 당선이 확정되지 않으면 득표율 1위 후보와 2위 후보가 맞붙는 결선이 30일 내 실시된다. 

본선까지 3개월이 남았지만 선거 분위기는 이미 고조되고 있다. 예선으로 볼 수 있는 오픈프라이머리가 코앞으로 닥쳤기 때문이다. 8월 13일 전국에서 실시되는 오픈프라이머리는 개방형 예비선거로 2009년 도입된 선거방식이다. 본선과 마찬가지로 유권자의 투표는 의무다.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대권주자 4명. 
여권 대통령예비후보 세르히오 마사 경제장관, 야권연대 ‘변화를 위해 함께’의 대표 파트리시아 불리치와 오라시오 라레타 부에노스아이레스시장, 경제달러화를 주장하고 있는 ‘자유 진전’의 하비에르 밀레이. (출처: 암비토)


선거연대나 정당은 오픈프라이머리에서 유효표의 1.5%를 득표해야 대통령선거와 총선 본선에 후보를 낼 수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는 각 선거연대나 정당의 대통령후보를 결정짓는 경선의 역할도 한다. 예컨대 A라는 선거연대에 1, 2, 3이라는 대권주자 세 명이 있다면 오픈프라이머리에는 세 명이 모두 출마해 가장 많은 표를 얻는 대권주자가 대통령후보 자리를 꿰차게 된다. 지금의 집권세력인 ‘조국을 위한 연합’은 세르히오 마사 경제장관을 단일후보로 내세웠지만, 유력한 수권세력인 야권연대 ‘변화를 위해 함께’에선 3명의 예비후보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변화를 위해 함께’는 23%, ‘조국을 위한 연합’은 19%로, 지지율에선 야권이 여권을 약간 앞선다. 2강구도 속에서 경제달러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틈새를 공략하고 있는 신생 선거연대 ‘자유 진전’도 12% 지지율을 얻어 대통령선거가 결선까지 간다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른 여론조사를 봐도 지지율 분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늘 그랬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인플레이션 100%를 넘어선 가운데 실시되는 선거는 ‘경제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지난해 일찌감치 연임 도전을 공식화했지만, 엉망이 된 경제로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자 결국 출마를 포기했다. 현직 대통령이 연임 도전을 포기한 건 1983년 민주주의 회복 후 처음이다. 대신 여권은 현직 경제장관을 예비대선후보로 세웠다. 현직 경제장관이 대권주자로 나선 것도 아르헨티나에선 초유의 일이다. 

앞으로 짧게는 4년(대통령 임기), 길게는 8년(연임 시) 아르헨티나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는 건 다시 한 번 국민의 몫, 아니 의무가 됐다. 


연임을 포기해 올해 12월 퇴임하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 (출처: 테에네)






※ 위 원고는 현지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로, (사)경북PRIDE기업 CEO협회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